"조카 딸 부부 신혼여행지로 울릉도 정해줬어요"
'선배' '인연' 한국어 직접 쓰며 한국과의 정(情) 강조 차기대사 내정 관련 질문엔 "백악관서 밝힐 일" 피해가 "첫 여성대사보다 가장 열심히 일한대사로 기억됐으면"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57)가 LA를 방문했다. 민간연구기관인 태평양시대연구원(PCI)이 매년 미국과 아시아 관계 증진에 이바지한 인물에게 주는 `빌딩 브리지스 어워드(Building Bridges Award)'를 수상하기 위해서다. 24일 LA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연례 PCI 수상식에 참석한 스티븐스 대사는 강연에 앞서 참석자들과 비교적 자유롭고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스티븐스 대사는 "(LA 인근에 사는)조카 딸 부부의 신혼여행지로 한국을 정해줬다"며 "조카 딸 부부와 함께 4월에 울릉도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또 학생들에게 "외교관으로 한국에서 일하기를 꿈꾼다면 한국어를 배울 것"을 조언했다. 그는 올 8월로 부임 3년을 맞는다. 주한 미국대사직은 통상 임기가 3년이다. 행사가 열리기 바로 직전 니혼 게이자이 신문은 그의 후임으로 미 국무부의 조셉 도노번 동아태 수석 부차관보가 내정됐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한 질문에 스티븐스 대사는 "대사임명은 백악관이 밝힐 일"이라고 답했다. 이날 스티븐스 대사가 말한 것중 가장 외교적인 수사(修辭)였다.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말을 잘한다. 강연 중간 중간에 '선배' '인연' 등 한국어를 사용하고 '우물안 개구리'속담도 인용했다. 한국 이름도 있다. '심은경'이다. 1975년 그가 30여 명의 평화봉사단원의 일원으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사용한 이름이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PCI에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한국인 특유의 '정'과 '한'이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할 줄 아는 미국인"이라고 스티븐스 대사를 소개했다. 또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문 교수는 스티븐스 대사의 '풀뿌리 외교'와 관련한 일화도 소개했다. 문정인 교수 일행과 스티븐스 대사가 함께 제주도 올레길을 오를 때다. 주위에서 삼겹살에 막걸리를 마시던 사람들이 대사 일행을 알아보고 막걸리를 권하자 대사가 주저하지 않고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고 한다.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변화들을 관찰하고 생각하면서 블로그 '심은경의 한국이야기'에 글을 올렸고 이를 바탕으로 '내 이름은 심은경입니다'라는 책을 냈다. 책의 내용과 스티븐스 대사의 PCI 강연을 토대로 '심은경'이 바라 본 한국의 경제 발전과 민주화 국제 위상 강화 등 3번의 큰 변화를 조명해 본다. ▶1975년 충남 예산중 교실 스물 두살 나이에 평화봉사단으로 낯선 땅 한국에 와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한국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겨울에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았고 학교는 너무 추웠다. 교실마다 작은 난로가 있었지만 나무가 너무 귀해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70명의 학생들이 난방도 되지 않은 좁은 교실에서 큰 키(스티븐스 대사의 키는 178센티미터다)의 서양인 교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좀 더 낳은 삶을 향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디. 2년 동안 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는 모습을 봤다.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지붕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산간벽지에 전기가 들어가고 도시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1987년 서울 광화문 거리 젊은 외교관이 되어 중국에서 2년을 일한 후 1984년 다시 한국에 왔다. 이 시기에 한국의 두 번째 변화를 목격했다. 예산에서 일할 당시 주말이면 시사 주간지인 '타임'을 사보기 위해서 대전으로 나갔다. 하지만 손에 쥔 '타임'지의 기사는 온통 검은 줄이 죽죽 가 있었다. 한국에 부정적인 내용을 모두 삭제하던 시절이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에선 정치담당 외교관으로 일했다. 임무중 하나는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야권 지도자들과 연락을 하는 것. 1986년 당시 조지타운대 교수로 '민주주의 연구소' 부소장이었던 매들린 울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울브라이트 교수와 함께 자택에서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념에 찬 어조로 한국의 민주화를 역설했다. 1987년 광화문 거리는 매일같이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다. 결국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위한 6.29선언이 발표되고 한국 '민주화'의 가능성을 보게된다. ▶2008년 서울 세종로 대사관 2008년 9월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돼 인천공항에 내렸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대사관에 들어 섰다.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1975년 같은 대사관 건물 구내식당에서 시험을 쳐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됐다. 대사관 건물은 지난 30년 동안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글로벌 코리아'가 더 이상 슬로건에 그치지 않았다. G20 의장국으로 서울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은 '한국'을 발전 모델로 삼고 있다. 1년 전 지진으로 참사를 경험한 아이티에는 한국기업 세아상역이 대규모 섬유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섬유단지에선 2만명이 새로 고용돼 아이티 재건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수차례 한국 교육의 우수성을 강조해왔다. 한국은 더 이상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었다. '물을 마실 때에는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라'는 한국 속담이 있다. 한국으로 부임한 선배 대사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 한국에 파견된 미국의 첫 여성대사로 기억되길 원하지 않는다. 남녀를 떠나 가장 열심히 일했던 대사 최고의 대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김기정 기자 kijungkim@koreadaily.com